방제학용어
방제학용어 | 이고(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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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1180~1251년.
금대(金代)의 저명한 의학가(醫學家)로서,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자(字)는 명지(明之)이며, 스스로 호(號)하기를 동원노인(東垣老人)이라 하였다. 진정(眞定:지금의 河北省 正定)사람임. 명의(名醫) 장원소(張元素)를 스승으로 모셨으므로 학술상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당시는 마침 전란중(戰亂中)이어서 백성들의 생활이 몹시 힘들고 어려웠으며, 굶주림, 매서운 추위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질병이 매우 많아서 상한(傷寒)의 치료법을 응용하는 것으로는 종종 효과가 없었다. 이고는 자기의 오랫 동안의 임상경험에서 이러한 원인들은 원기(元氣)를 가장 손상시키기 쉽다는 것을 깨닫고 "내상학설(內傷學說)"을 제시하여, "비위(脾胃)를 내상(內傷)하면 뭇질병이 이로부터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黃帝內經》의 사시(四時)에 모두 위기(胃氣)를 북돋움을 근본으로 삼는 이론에 근거하여 치료에 있어서 조리비위(調理脾胃), 승제중기(升提中氣)를 강조하고, 스스로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등의 새로운 방제를 만들었다. 그가 온보(溫補)하는 방법으로 비위(脾胃)를 잘 조리(調理)하였기 때문에 후세에 그를 대표로 하는 학술한파를 "보토파(補土派)"라 불렀다. 만년에 그는 나천익(羅天益), 왕호고(王好古)등에게 학술(學術)을 전수(傳授)하였다. 의학저서로는 《脾胃論》, 《內外傷辨惑論》, 《 室秘藏》, 《醫學發明》, 《藥象論》등이 있다. 한의학 발전에 지대(至大)한 공헌을 하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