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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제학용어

방제학용어 왕앙(汪昻)
해설 1615~?. 청대(淸代)의 저명한 의가(醫家).
저(字)는 인암( 庵)이며, 안휘성 휴령(安徽省 休寧)사람임.

초년에 유학(儒學)을 하여 선비가 되었는데, 30여세에 관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의학에 전념하여 전후 40여년간 제자경사(諸子經史)와 각가의적(各家醫籍)을 두루 섭렵하였으며, 저술을 비교적 많이 하였는데, 그중 1682년에 간행된 《醫方集解》는 송대(宋代)의 명의 진언(陳言)이 지은 《三因極一病證方論》 및 명대(明代) 오학고(吳鶴考)의 《醫方考》의 대략적인 뜻을 참조(參照)하고, 더 나아가 병을 분류하여 방(方)을 나열하고, 아울러 각가(各家)의 논술 및 방제를 선택하여 만든 것이다. 1689년에 간행한 《素問靈樞類纂約法》은 각가(各家)의 설을 참고한 《黃帝內經》(鍼灸는 제외)에 대한 분류와 간단한 주석(註釋)을 붙인 것이다. 1694년에 간행된 《湯頭歌訣》은 흔히 쓰는 방제 300여방을 가려서 적었는데 칠언가결(七言歌訣)로 엮어 만들어 간략한 주석을 후기(後記)하였다. 《本草備要》는 제가(諸家)의 본초를 수집하여 간략하게 엮어 만든 것으로 약(藥), 증(證), 병인(病因)을 연관시켰고, 아울러 400여폭의 그림을 덧붙였다.
왕씨의 의학이론은 《黃帝內經》등 고전의학서적을 주로 따랐으며, 아울러 제가(諸家)의 장점을 채택하였는데, 그의 저술은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요약(要約)되어 있어서 알기쉬우므로 후세에 의학을 배우는 이들이 즐겨 읽어 비교적 널리 유전(流傳)되어 의학보급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명말(明末)에 중국에 들어온 서의학(西醫學)에 대한 태도도 비교적 개방적이어서, 서의(西醫)가 비록 기화(氣化)의 이치에는 밝지 않으나, 형태방면에 대한 논술은 비교적 적확(的確)한 연구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또한 “腦爲元神之府.”, “靈機記憶在腦.”라는 등의 설(說)도 《本草備要》에서 기술하였다.

※ 법적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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